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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 스토리-양병이 코리아둘레길 추진위원장 ①] 하루 20리길 걷던 소년, 전국 ‘사람길’ 잇다(2017.06.02)
관리자 조회 93 댓글 0 2021-07-20

릴적 전주 완산 칠봉기슭 누비던 양병이 코리아둘레길 추진위원장…

770㎞ 해파랑길 연결 이어 DMZ길·해안누리길 방방곡곡을 ‘하나의 길’로


그의 착한 인상에서 지식인의 도도함을 볼 수 없다. 어눌한 말투에서 과감한 액션이 있을까 싶었다. 지성미가 엿보이지만 만나면 ‘씨익~’ 웃어주던 시골의 아저씨 같았다.

우리는 흔히 절세 미인은 덜 노력하고 지식인은 행동이 굼뜬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내성적이면 역동적이지 않고, 외향적이면 세심하지 못하다는 선입견도 작용한다. 어느 정도 부인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전주가 낳은 천재 중 한 명인 양병이(71) 서울대 명예교수를 만나 얘기해 보면, 참 착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내로라 하는 지식인더러 착하다는 말이 주제넘게 느껴지듯, 양 교수는 우리 사회의 흔한 편견을 무참히 깼다.
 

완산 칠봉 자연 속을 걸으며 성장한 양병이 서울대 명예교수가 4500㎞ 코리아둘레길 국민 걷기 청사진을 그린 것은 청소년기 추억과 무관치 않다. 강단을 박차고 나가 국민에게 초록색 건강을 안기려는 환경학자의 재능 나눔은 6월의 신록처럼 싱그럽다. 박해묵 기자/mook@


왜소하지만 똑바른 체격, 아이같은 미소, 중학교 1학년 반장 처럼 품행이 방정한 자태의 양 교수는 지금 대한민국 영토를 하나의 동앗줄로 꿰는 4500㎞ ‘코리아 둘레길’ 민간추진협의회 위원장이다.

4개 광역단체장의 지원속에 770㎞ 해파랑길을 연결시긴 개척자이다. 착한 그가 개척자가 되는 ‘반전매력’의 형성과정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물 흐르듯, 구름에 달 가듯, 게으른 나그네 길 걷는 듯한 그의 여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그는 태어나서 전주고 졸업때까지 완산 칠봉 기슭에서 살았다. 모든 사람이 고귀하고 평등하다는 동학운동의 격전지인 칠봉의 전나무, 삼나무, 측백나무, 칠성암 약수의 에너지를 받으며, 어릴 적부터 10리쯤 되는 학교를 걸어다녔다.

‘국민 걷기, 코리아둘레길 대장이 되신, 무슨 인연이라도 있었나요?’라는 질문에 “걷는 게 어릴 적 부터의 삶이었는데요 뭘”이라는 답이 전부다.

우등생 소년이지만 방과후엔, 돼지 키우며 안팎 집안살림을 도맡았던 어머니를 도왔다. ‘공부나 하라’를 말씀에도 병이가 자처한 일은 돼지여물통에 채울 음식잔반을 집집마다 다니며 수거하는 일이었다.

병이는 또 걷는다. 치뛰고 내리뛰고…. 여물통을 채우는 일은 아버지를 여읜 후 그에겐 희망이자 사랑이었기에 행복했다. 백부모에게 양자입양된 것이 아기 때이기에 그냥 어머니, 아버지이다. 카타르시스가 필요할 때 해발 200m쯤 되는 칠봉으로 달음질쳤다.

칠봉소년은 서울대를 마치고도 어릴적 못다한 공부를 계속했다. 정든 고향마을 생각에 농업경제, 지역계획학, 조경에 무게중심을 두고 응용연구와 탐구의 지평을 넓혀나갔다. 어느새 ‘그린라이프’와 ‘녹색지식의 활용’은 양 교수 인생의 전부로 자리잡는다. 한국조경학회장을 맡고있는 조세환 교수 등 무수히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며 강단에서 ‘녹색’을 설파하기 15년쯤 지난 1991년 낙동강 페놀사건을 비롯해 우리의 삶터를 위협하는 환경사건이 잇따라 터진다.

숱한 조언과 대책을 던져보지만, 현장은 좀 처럼 변하지 않았다. 강단 아카데미즘과 현장의 괴리가 크다는 점, 실천가가 아닌 지식인의 한계 같은 것이 밀려온다. ‘내가 이러려고….’라는 생각이 들 만한 때였다.

남들은 조금 여유를 찾을, 나이 50에 캠퍼스 안팎 ‘투 잡’을 자처한다. 돈 안되는 바깥 실천활동, ‘재능기부’에 나선 것이다. 동학군 같은 결기가 아니었다. 그냥 이웃에 힘든 일거리가 있으면 같이 치워주는, 전주 칠봉 아랫마을 사람들이 하던대로 나섰다.

그가 몸을 두 배로 굴리는 일은 네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995~2000년은 환경위기 극복의 시대였으므로 서울시, 내무부, 건교부 등 정부(GO)와 환경운동연합 등 비정부(NGO)를 오가며 대안 마련 중심의 자문과 현장캠페인을 벌였다.

2000년엔 이제 환경감시 보다는, 가꾸고 아름답게 하는 긍정적(Positive) 활동에 방점을 둔다. 영국에서 탄생한 환경운동 내셔널트러스트 한국 캠페인이다. 양 교수는 무려 13년간 이곳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광역단위, 마을 단위 보존과 녹지이용에 대한 제안 및 캠페인을 벌였다. 2008년엔 환경부의 생태탐방로 프로젝트를 입안,자문했다.

NGO활동 조차 ‘투잡’이다. 2007년부터는 서울그린트러스트라는 비영리 재단법인의 이사장을 맡으면서 시민 꽃길 감상 프로그램, 어린이 환경체험, 노인힐링 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했다. 뜻있는 전문가와 지식인으로부터 재능기부를 받았고, 아이와 어르신을 위한 프로그램에는 많은 아줌마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보탰다.

착한 양 교수가 ‘마을공원’ 조성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신이 났다. 어차피 쓰임새가 없는 동네 공터를 공원으로 조성해주는 사업이었다. 서울그린트러스트가 공짜로 해주니 각 동사무소 직원들과 마을 사람들은 기뻐했고 돌아가며 일손을 도왔다. 공사비는 시티은행이 댔는데, 과정도 재미있다. ‘이런 내용의 공익사업을 하려는데, 지로 용지 우송 대신 온라인 입출금하셔서 지로용지 발송료를 아껴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했더니 은행 고객들도 흔쾌히 동의해줬다.

이렇게 해서 조성된 서울시내 마을 공원은 광진구 광장동 414-23번지, 강서구 개화동 425-4번지, 성동구 성수동1가 소재 뚝섬유수지 거주자우선 주차장(16-36구간) 등 무려 26개이다. 지금 이 NGO의 마을공원 사업은 인천까지 진출했다.

다른 봉사활동을 하다가도 전격 마을공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양 교수는 최일도 목사가 주도하는 ’밥퍼‘ 봉사에 관여하다 허름한 봉사 공간 인근 공터가 방치돼 있음을 발견하고 시티은행 창립 특별나눔 이벤트로 제안해 나무와 꽃을 심어 소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내셔널 트러스트를 그만두고는 사단법인 ‘한국의 길과 문화’를 만들었다. ’코리아둘레길‘ 구상이 탄생한 곳이다.

첫발은 곧게 뻗은 동해안 해파랑길에서 내디뎠다. 4개 광역단체와 문화체육관광부에 취지를 설명했더니 흔쾌히 받아주었고, 해파랑길은 길과 문화 등 민간의 노선 확정 및 붐업, 시범 완주 등을 거쳐 지난해 소속 정당이 다른 4개 지자체장의 초당적 협조 속에 개통됐다.

걷기의 달인인 그는 아직도 자녀들과 여행을 다닌다. 보통 대학에 들어가면 부모 따라 여행가는 경우가 드물지만 양 교수의 부인과 1남1녀는 어릴적부터 줄곳 함께 여행을 가고, 여행지에서 가족 간 장벽을 없앨 목적으로 고안한 ‘기도 제목, 교환하기’ 등 행복프로그램을 공유했다. 자녀 출가 후에도 손주까지 붙여 3대 가족 정례여행을 떠난다.

“슬로라이프 걷기는 가족 행복, 친구간 우정을 다지는데 더없이 좋은 보약입니다”

남해안길, 서해안길, DMZ길 연결을 도모하는 양 교수가 된사람, 든사람이기도 하지만 ‘착한 사람’이기에 그의 추진력을 믿게 된다.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것을 가진 듯하고….’ 그의 초록 미소는 이양하가 노래한 신록의 풍요로움을 닮았다. 나눔은 진정한 부자를 만든다는 테레사 수녀의 가르침이 향기로운 초여름 바람에 실려간다.

함영훈 선임기자/abc@heraldcorp.com 

 

 

<뉴스출처 : 해럴드 경제>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70602000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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